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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부자 | 형제, 나눔으로 기리다 오용호, 오양호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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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2016-01-10 14:29 조회8,204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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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용호 변호사(우)

1973년 모교 법과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독일 브레멘대학교와 하버드대학교 로스쿨에서 유학했다. 

서울고등법원 판사, 대법원 재판연구관 등을 역임하고, 현재 ‘변호사오용호법률사무소’ 변호사로 활동 중이다.

 

오양호 변호사(좌)

1984년 모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하버드대학교 로스쿨에서 유학했다. 

‘법무법인(유) 태평양’의 변호사로 활동하며 ‘한국통신 민영화’,  ‘전력산업구조 개편’ 등 정보통신 및 에너지 분야의 중요 사건들을 맡고 있다. 

 

부친의 가르침은 세상을 보는 시선이 되었다.  

형제를 향한 그리움은 주변을 품는 진심으로 자랐다. 

오용호, 오양호 동문은 그 마음을 모아 나눔을 실천한다. 

 

가족을 향한 그리움, 나눔으로 피어나다

열 살 터울 형제는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동문 사이다. 

장남인 오용호 동문은 부친이 세상을 떠난 후 다섯 남매의 정신적 가장이었고, 막내 오양호 동문은 특히 그를 가장 잘 따랐다. 

형제로서, 법조인으로서 서로를 의지하며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두 사람은 부친의 생전 가르침을 언제나 마음에 새긴다. 

“교육자였던 아버님께서는 항상 ‘주변을 향한 따뜻한 관심’을 말씀하셨습니다. 특히 어렵게 공부하는 학생들이 뜻을 펼칠 수 있게 도우라고 당부하셨지요.”(형 오용호) 부친 故 오영일 선생은 젊은 시절 녹록하지 않던 집안사정 속에서도 가정교사로 일하며 학업을 마쳤고, 장학관을 지냈다.

“아버지께서는 어려웠던 학창 시절을 기억하며, 몸소 나눔을 실천해오셨습니다. 저희들은 그 모습을 통해 ‘나눔’을 배웠습니다.”(동생 오양호)

부친의 뜻을 기리며 두 사람은 서울대학교에 ‘오영일·오봉호 장학기금’을 출연했다.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 부친과, 여기에 함께하지 못한 또 한 명의 형제 故 오봉호 동문을 추모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 생각해 내린 결정이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정신과 전문의로 일했던 동생은 군의관 생활 중 투병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서른둘이라는 젊은 나이에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죠.” (형 오용호) 장학기금은 법학전문대학원과 의과대학, 故 오봉호 동문의 아들이 재학 중인 물리천문학부의 학생들을 위해 사용되고 있다.  

 

리더의 실천,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들다 

누구보다 치열한 청년 시절을 보낸 오용호, 오양호 동문. 

이들은 서울대학교 재학 중에 사법시험에 합격한 실력자들이다. 

제15회 사법시험을 최연소 합격하고 판사로 근무했던 오용호 동문은 현재 ‘오용호법률사무소’ 대표 변호사로 활동 중. 

오양호 동문은 제25회 사법시험 합격 후, 미국 하버드대학교에서 유학하고 뉴욕주 변호사 자격까지 취득했다. 

법조인으로 명성을 쌓은 두 형제는 기부를 통해 더 나은 세상이 오길 바란다. 

“국가는 모든 국민에게 기본권을 보장합니다. 하지만 자본주의를 바탕에 둔 경쟁사회에서는 부득이하게 소외계층도 생겨납니다. 자연스럽게 정의를 실현하고 소득재분배를 이루는 한 가지 방법이 있다면, 좀 더 수입이 높은 이들의 자발적인 나눔이 아닐까요?”(동생 오양호) 

“기부문화가 활발한 미국에서는 재력가들이 기부에 더 적극적입니다. 재산의 절반 이상을 사회에 환원하는 그들의 삶은 존경의 대상이기도 하죠. 우리나라도 사회의 혜택을 입은 각 분야의 리더들이 자신의 것을 나누는 삶을 실천했으면 좋겠습니다.”(형 오용호)

부는 혼자만의 재능과 능력으로만 일구어낸 것이 아니라고 믿는 두 사람. ‘오영일·오봉호 장학기금’은 그러한 신념을 몸소 지켜온 부친의 가르침에서 시작되어, 형제를 향한 그리움으로 싹을 틔웠다. 

이제 두 형제는 학생들이 성장해 나눔이 열매 맺기를 기대한다. 

두 사람은 입을 모아 말했다. 

“학생들이 장학금을 통해 학업에 더욱 매진하고, 주변을 돌보는 따뜻한 가슴의 인재가 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