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자 | 오세경 박사 "꿈 따라 떠난 길에무지개가 피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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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2016-08-23 10:58 조회8,696 댓글0본문
꿈 따라 떠난 길에무지개가 피었더라
오세경 박사
1965년 약학대학을 졸업 후 미국으로 유학하여 보스턴대학교 의과대학에서 부교수를 역임하고, 산업계를 거쳐 은퇴할 때까지 암 연구에 헌신했다.
2005년 약학대학에 ‘오세경 장학기금’을 조성하고, 지난해 작고한 남편 제럴드 슈클라(Gerald Shklar) 박사를 기리며 서울대학교 고문헌 도서관에 ‘슈클라 문고’를 세웠다.
연구에 대한 소명 말고는 아무것도 없이 미국 유학길에 올라, 심장마비를 진단하는 가장 획기적인 시약을 개발했다.
낯선 땅에서 보낸 50년, 생의 어느 순간에서든 그녀의 가슴에는 어떤 뜨거운 것이 가득 차있었다.
따뜻하고, 열정적인 여성 과학자의 길을 걷다
동그란 얼굴에 소녀처럼 웃는 얼굴을 한 오세경 박사(Sue O. Shklar)가 오랜만에 한국을 찾았다.
지난해 작고한 남편의 서재에서 꾸린 귀한 책을 전하기 위해서다.
1567년 라틴어판 히포크라테스 전집, 장 자크 루소 전집과 찰스 다윈전집을 비롯해 과학, 의학, 문학, 음악, 미술 분야를 망라하는 고도서(古圖書)는 미국에서도 쉽게 볼 수 없는 책이다.
“서울대학교에서 이런 도서를 보유한다면 자긍심이 생기겠지요. 몇몇 책은 하버드대학교에서도 기증 요청을 했지만, 이미 그곳은 세계적인 의학 원서를 많이 보유하고 있으니까 한국 학생들에게 읽을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주고 싶었어요.”
따뜻한 대답에 후배들을 아끼는 마음이 묻어났다.
오세경 박사는 10년 전부터 어려운 환경에서 공부하는 약학대학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하고 있다.
그 애틋함을 감출 수 없는 이유는, 고등학생 때부터 고학을 했던 유년시절의 기억에서 비롯한다.
평안북도 선천에서 지식인 부모님 아래 1남 2녀의 둘째로 태어난 오 박사. 한국전쟁 때 월남한 후 가세는 점점 기울었다.
어려운 형편 탓에 어머니는 딸의 대학 진학을 반대했다. 똑똑한 딸은 이미 식구들의 생활을 책임지기 위해 하루 1시간도 낭비하지 않고 일하며 공부하고 있었다.
“그래도 포기할 수는 없었죠. 제가 의사가 되길 바라셨던 아버지의 바람을 이뤄드리고 싶었어요. 큰 오빠가 서울대생은 과외를 하면 수입이 괜찮을 거라고 어머니를 설득해서, 어렵게 돈을 꾸어다가 입학할 수 있었죠.”
등록금을 면제받지 못하면 공부를 계속할 수 없었다.
공부는 그녀가 한국에서 유일하게 마음껏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성실하고 필사적이었던 덕분에 수석으로 졸업했고, 미국 대학원 입학은 어렵지 않았다.
간신히 비행기삯을 마련해 유학을 떠나며 그녀는 한 가지 다짐만을 가슴에 품었다. 일생을 과학 연구를 위해 보내겠다는 것.
“혼자라도 원하는 방향으로 살아야겠다고 여겼어요.
일생 동안 암 연구를 하다가 좋은 사람을 만나면 좋고 그렇지 않아도 죽을 때까지 연구만 하겠다는 목표를 세웠어요.”
당장은 어려워서 남의 도움을 받더라도,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는 더 좋은 시기가 올 거예요.
그때 자기가 받은 은혜를 잊지 않고 남을 돕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남을 배려하는 연습을 꾸준히 해야 해요.
저는 장학생들이 그런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인생에서 가장 사랑했던 이를 기리는 마음으로
1960년대, 미국에서도 박사학위를 가진 여성은 드물었다.
생화학 분야를 연구하겠다 했을 때 대학원장은 ‘이건 굉장히 어려운 분야라서 여자는 할 수 없다’고 반대했다.
보스턴대학교 의과대학에 조교수로 부임했을 때 2,000명의 교직원 중 동양인은 오 교수가 유일했다.
“상당히 힘들었죠. 외롭기도 했고요. 하지만 연구 생활이 천직이고 그 외엔 가치가 없다고 생각할 만큼 각오가 서 있다면 어떤 위기나 어려움도 극복할 수가 있어요. 가장 창조력이 풍부한 청춘시절을 연구실에서 보낸 보람을 얻을 수 있는 거죠.”
외로웠지만 인색한 삶은 아니었다.
가난한 학생들이 연구자의 길을 끝까지 걸을 수 있도록 물심양면 지원하고, 보스턴에서 40여 년을 살며 한국인 유학생들을 도왔다.
너른 마음으로 사람을 길러내던 그녀. 1997년, 뒤늦게 생의 동반자를 만났다.
“남편과 보낸 시간은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에요. 20년 동안 친구로만 알고 지낸 사람이었는데 사랑에 빠지고 보니 저와 정말 잘 맞았죠. 1996년에 프러포즈를 받고, 97년에 결혼을 했는데, 제가 심장마비 진단 시약을 만든 것도 그 시기였어요.”
하버드대학교에서 치의학과 석좌교수를 역임한 남편 故 제럴드 슈클라 박사는 지난해 세상을 떠나면서 아내에게 모든 것을 맡겼다.
그리고 이제 그녀는 자신이 그간 받았던 사랑을 잊지 않고, 이세상을 사는 동안 할 수 있는 만큼 다른 사람을 돕고자 한다.
유년의 고향을 떠나 낯선 땅에서 무지개를 쫒던 소녀.
주어진 환경에, 어떠한 제약과 어려움 에도 타협하지 않고, 자신이 바라는 행복을 찾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
잡힐 듯 먼 곳에서반짝였다 가뭇없이 사라지는 아름다운 무지개의 빛을 마음에 품어 안고 그녀는 오늘도 사랑을 나누며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