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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부자 | 김영수 동문 "‘100’이라는 숫자 앞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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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2020-10-27 16:36 조회4,519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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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수 명예교수_치의학전문대학원, 치의학 57입

 

국내 임플란트 권위자의 반열에 오르다
김영수 명예교수는 서울대 치의학과 입학해 치과보철학 석사와 박사 과정을 거쳤다. 치과보철학은 파손되거나 상실된 치아를 지닌 환자에게 생체 친화적인 인공물을 이용해 손상된 형태와 기능 회복을 돕는 학문으로, 쉽게 말하면 주로 틀니를 연구하고 만드는 것이다. 그가 보기에도 틀니는 이가 온전하지 않은 사람에게 도움을 주지만, 음식을 먹다가도 자주 떨어지는 등 아쉬움이 많았다. “진료하다가 환자에게 틀니에 못을 박아서 붙박이장처럼 붙였으면 좋겠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임플란트라는 큰 힌트를 얻은 셈이지요.” 당시 그는 틀니보다도 의료진으로서 특수한 의료 시술을 개발하고 싶다는 꿈이 있었다. 그 길로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힌트의 답을 찾기 시작했다.
1973년, 미국에서 오하이오주립대 의사들이 시도한 임플란트 시술을 봤지만 예후가 좋지 않았다. 실망스러울 무렵 좋은 소식을 전해 들었다. 스웨덴 외과 의사 브레네막이 뼈 수술을 하다 티타늄이 뼈세포에 달라붙는 성질을 발견한 것. “이때까지 임플란트 시술에 활용한 금속으로 이가 상하거나 빠지기도 했습니다. 우연히 임플란트에 적합한 티타늄 소재를 발견한 것이지요. 이후로는 안정적인 임플란트 시술이 가능해졌습니다.” 김 교수는 1985년 스웨덴에 직접 찾아가서 스웨덴의 임플란트 기술을 도입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수입까지 과정은 순탄치 않았지만, 오하이오주립대와 하버드대에서 꾸준히 임플란트를 연구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꾸준히 설득해 1985년, 드디어 한국에 임플란트 기술을 도입할 수 있었다.

 

꿈을 실현해준 서울대에 보답하다
김 교수는 임플란트 기술 도입 이후에 치의학계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 그의 전공인 보철학을 문제 삼은 것이다. “보철학을 전공해놓고 임플란트 수술을 한다고 많이 야단맞았습니다. 한국에서 임플란트 수술을 할 의사가 저밖에 없었기 때문에 강단 있게 밀고 나갔습니다. 학교에서도 많은 도움을 주셨지요. 새로운 의료 기술을 도입하고 싶다는 꿈을 이루게 도와준 서울대에 감사합니다. 덕분에 한 분야를 개척할 수 있었습니다.” 올해로 그가 몸담았던 치의학대학이 100주년을 맞았다. 그는 지금까지 서울대에서 받았던 많은 혜택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치의학대학 100주년 기념기금 1억 원을 기부했다. “서울대학교에 재직하면서 많은 사회적 명예를 누렸다고 생각합니다. 항상 대학에 기여해야겠다는 생각이 많았는데, 이 기회로 작게나마 기여하게 되어 기쁩니다.” 
오랜 시간 서울대에 재직한 교수인 만큼, 치의학계 후학 양성에 있어 그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바가 궁금했다. “대학에 있으려는 후학은 개업하는 치과의사들과는 다른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꾸준히 노력해서 신기술을 개발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려면 도전하고 개척하는 정신을 가진 후학을 양성해야지요.” 개념 자체가 생소한 시기에 ‘임플란트’라는 새로운 기술을 수용하고, 도입하며 그 시장을 개척한 김영수 명예교수. 지금까지 임플란트 수술 6,000회를 돌파한 범접하기 어려운 치의학계의 큰 스승이지만, 그는 여전히 현역에서 임플란트 수술을 진행하려는 열정 가득한 청년 의사를 꿈꾼다.